결혼과 관련된 질문들


결혼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은?



질문: 결혼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은?

대답:
창세기에서는 결혼은 신성한 제도라 합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3-24). 하나님은 남자를 창조하시고 그 후에 “아담의 뼈”로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셨습니다 (창세기 2:21-22). 갈비뼈는 히브리어로 사람의 옆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브는 아담의 측면에서 취하여졌고, 이브는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아담의 옆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 라 아담이 돕는 베필이 없으므로” (창 2:20). “도움” 과 “베필”, 이 두 단어는 모두 히브리어, “ezer”라는 단어로 같은 어원에서 오며 뜻은 곁에 있다, 보호하다, 돕다 혹은 돕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돕는다 보조하다 도움을 더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브는 아담의 곁에서 아담의 다른 반 쪽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는 이런 하나됨에 대해서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6).

바울은 그의 일부 편지에서 말하길 결혼은 성경 가르침대로 다스리라 합니다. 그리고 거듭난 신자로서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 안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과 에베소서 5:22-23이 그것입니다. 이 두 부분을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혼이라는 건축물을 잘 세울 수 있는 뼈대로서의 성경적인 원리를 제공합니다.

에베소서에 있는 구절들은 특히 성공적이며 성경적인 결혼을 잘 보여줍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서 5:22-23).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 5:25). “이와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에베소서 5:28-29).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에베소서 5:31).

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리들이 거듭난 신자 둘의 관계가운데 적용되어 한 남편과 아내가 조화를 이룬다면 이것이 성경적인 결혼입니다. 이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남편과 아내의 머리로 삼을 때 이루어지는, 양쪽 모두를 조화를 이루는 관계가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에 대한 성경의 관점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하나라는 그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가운데 그려보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결혼을 만드는 길은 무엇인가?



질문: 영원히 지속되는 결혼을 만드는 길은 무엇인가?

대답:
사도 바울은 말하길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매여 있다고 합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로마서 7:2).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결혼의 끈이 끝나는 때는 한 쪽이 죽을 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오늘날에 결혼은 51% 이상의 이혼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는 모든 결혼한 커플 중에 반 이상이 결혼식 때 한 서약 “죽음 만이 우리를 갈라 놓는다” 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 한 커플들은 이 서약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 가장 중요한 이슈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은 결혼 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싱글로 있을 때 훈련되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아모스 3:3) 하십니다. 거듭난 신자에게 이는 믿지 않는 자와는 가까이 지내려 시작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어둠과 빛이 어떻게 같이 하겠느냐?” (고린도후서 6:14) 이 말씀이 결혼의 원리가 된다면 아마 결혼 후 많은 아픔과 고통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결혼을 지켜주는 또 다른 원칙은 남편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아내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5-31). 상응하는 원리는 아내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주께 하듯 남편에게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을 영적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교회를 자신의 신부로 삼으셔서 사랑하고 높이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계시록 19:7-9).

하나님께서 첫 결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이브를 아담에게 데려 오셨을 때, 이브는 아담의 “살과 뼈”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31). 그리고 그들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23-24). 이는 현대결혼에 있어서 잊혀진 내용들입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결합 그 이상입니다. 한 개체를 이루기 위한 혼과 마음의 결합까지도 뜻합니다. 이런 관계는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매력을 넘어서서 영적인 하나의 경지에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결합은 하나님께 순복한 자들 가운데서 그리고 서로에게 순복한 남녀에게서 나타납니다. 이는 “나/ 내 것”이 아니라 “우리/우리 것”을 말하는 관계입니다. 이것이 오래 지속되는 결혼을 만드는 비결입니다. 죽음이 서로를 갈라 놓을 때까지 지속되는 결혼을 만드는 것은 양쪽이 모두 서로를 우선순위로 하는 것입니다. 수직적 관계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견고히 하는 것은 수평적 관계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영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관계가 되게 합니다.

이혼과 재혼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는?



질문: 이혼과 재혼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는?

대답:
이혼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성경의 말라기 2:16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노라.” 성경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일평생의 헌신으로 계획하셨습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찌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9:6). 죄성을 지닌 두 사람의 결혼이기에 그들의 죄성이 이혼을 가져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혼당한 사람 특히 이혼당한 여자측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을 두셨습니다 (신명기 24:1-4). 예수님께서는 이런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주어진 것임을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8).

이혼과 재혼에 대한 논쟁은 마태복음 5:32 와 19:9의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진전됩니다. 즉 “음행한 연고 외에”라는 말은 이혼과 재혼이 고려되는 예외 상황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번역가들이 이 예외가 되는 경우를 약혼 기간 동안의 외도로 봅니다. 유대인의 관습에서는 약혼한 남녀도 이미 결혼한 부부로 간주하기 때문에 약혼기간 동안의 부도덕은 이혼할 수 있는 유일한 사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번역한 “혼인상의 불충”은 모든 모양의 성적 부도덕을 뜻할 수 있습니다. 간음, 매춘 모두를 뜻할 수 있습니다. 고로 예수께서는 성적 부도덕이 사유가 되는 경우는 이혼이 허가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적인 관계는 “둘이 한 몸을 이룰찌라” (창세기 2:24; 마태복음 19:5; 에베소서 5:31)는 말씀에도 있듯이 결혼의 끈을 잇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혼인관계 이외의 성 관계로 그 끈을 끊는 것은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재혼도 고려하셨습니다. “다른 데 장가드는” (마태복음 19:9) 문구는 어떻게 해석되던지 간에 이혼과 재혼이 가능한 예외의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절을 지킨 쪽만 재혼이 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재혼이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이혼 후 재혼은 성적 부도덕을 범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닌, 피해를 당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긍휼로 봅니다. 죄를 지은 측도 재혼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이 말씀에서 가르치는 바는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7:15은 또 다른 예외의 경우를 말합니다. 즉 불신자인 배우자가 믿는 사람과 이혼을 원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재혼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오직 신자는 믿지 않는 배우자가 떠나길 원할 경우 혼인관계 유지에 묶이지 않습니다. 또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나 배우자 학대나 아동 학대도 이혼의 사유가 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의 추측에 근거한 말씀 해석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때로 이혼이 허락되는 예외의 경우를 두고 끝이 없는 논쟁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예외의 경우를 해석할 때, 이혼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꼭 이혼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간음을 범한 부부도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 용서하고, 둘의 결혼이 다시 견고하게 되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죄를 용서하셨기에, 간음의 죄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2). 그러나 많은 경우에 배우자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 성적인 부도덕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경우 마태복음 19:9이 적용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혼 후에 너무 급히 재혼을 합니다만 하나님은 그들이 독신으로 남아있기를 원하십니다. 독신으로 머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분산되지 않기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7:32-35). 이혼 후 재혼이 가능하지만, 꼭 재혼만이 유일한 선택사항은 아닙니다.

크리스찬으로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혼율이 불신자 가정만큼 높아졌다는 사실은 우리를 낙심케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혼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또 화해와 용서가 믿는 자들의 모습이 되야 한다고 성경은 무수히 얘기합니다 (누가복음 11:4; 에베소서 4:3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이혼이 불가피한 상황을 인정하십니다. 그렇기에 이혼하거나 재혼한 신자들은 하나님께 덜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의 경우가 마태복음 19:9에 있는 예외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크리스찬들의 죄악된 불순종을 사용하셔서 선한 일을 이루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종간 결혼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하나?



질문: 타인종간 결혼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하나?

대답: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다른 민족들과의 혼인을 금합니다 (신명기 7:3-4).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 민족들과의 결혼으로 자신들이 섬기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좀 다른 차원에서이지만 유사한 원리가 신약에도 나타납니다. “너희는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린도후서 6:14). 즉 이스라엘 민족(유일한 참된 하나님을 믿는) 들이 불신자와 결혼하지 않도록 주의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인 (유일한 참된 하나님을 믿는) 들도 불신자와 결혼하지 않도록 명령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성경은 타인종간의 결혼이 틀리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마틴 루터 왕은 사람이 자신의 인격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지 피부색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크리스챤 삶 가운데에는 인종에 따른 차별대우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2:1-10). 크리스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기준은 내가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자인지 알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3-5). 배우자를 고르는 데 있어 성경의 기준은 그리스도에 둔 믿음이지 피부색이 아닙니다. 고로 타인종간의 결혼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 판단력, 그리고 기도가 필요한 문제가 되겠습니다.

타인종간의 결혼을 고려해야 될 단 한 가지 이유는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힘든 시간을 지나쳐야 하는 어려움 때문입니다. 많은 국제결혼을 한 부부들이 인종차별이나 무시를 당하고, 심지어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당합니다. 국제결혼 한 몇몇 커플들 중에는 그들의 자녀가 부모나 친척들과 피부색이 다를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국제결혼을 하려고 결심한 부부들은 이런 사항들을 심사 숙고하여 아이들을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독교인들의 결혼에 있어 성경이 제한하는 것은 배우자가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속한 자인지 살피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혼했습니다. 제가 성경에 따라 재혼할 수 있습니까?



질문: 저는 이혼했습니다. 제가 성경에 따라 재혼할 수 있습니까?

대답: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혼한 사람인데요. 재혼해도 될까요? 혹은 두 번 이혼했는데 처음에는 배우자의 외도때무이었고, 두 번째는 성격 차이로 이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 번 이혼한 남자와 데이트 중인데, 그 남자는 처음에는 성격차이로 두 번째 자신의 외도로 그리고 세 번째는 아내의 외도로 이혼했다고 합니다. 우리 서로 결혼해도 될까요?” 이런 질문에 답하기 매우 곤란한 것은 한 번 이혼한 후에 재혼할 수 있는지 없는지 성경이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결혼한 커플이 그 둘이 사는 동안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24; 마태복음 19:6). 이혼 후에 재혼이 가능한 유일한 경우는 외도가 이유가 되는 경우인데 (마태복음 19:9) 이 외도 사유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논쟁 사안입니다. 또 이혼이 가능한 경우는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자를 떠날 때인데 (고린도전서 7:12-15) 그렇다고 특별히 재혼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그냥 그 상태로 남아 있으라 권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특별히 얘기하지 않지만, 육체적, 성적학대, 그리고 심각한 정신적 감정적 학대는 이혼과 재혼의 충분한 사유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혼 문제에 있어서 확실한 두 가지는… (1)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신다 (말라기 2:16) (2) 하나님은 자비롭고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혼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것이 한 쪽의 잘못이건 양쪽 모두의 잘못이건 간에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혼을 용서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이혼이 다른 죄보다 덜 용서받을 만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죄에 대한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마태복음 26:28; 에베소서 1:7). 그럼 하나님이 이혼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재혼해도 된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독신으로 남아 있으라고 권장하십니다 (고린도전서 7:7-8). 독신을 저주나 처벌로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보다는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서 섬길 수 있는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32-36). 그런데 성경은 또 말하길 정욕으로 불타는 것보다는 재혼하라 합니다 (고린도전서 7:9). 아마 이것이 이혼 한 후 재혼하는 사유가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 처음 제시한 질문, 그 경우에 있어서 결혼이 가능한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궁극적으로 질문한 여성과 그 여성이 만나는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해결해야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적절한 답안은 그 여성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5).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해 보십시오 (시편 37:4).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잠언 3:5-6) 그리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비신자와 데이트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은 옳습니까?



질문: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데이트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은 옳습니까?

대답:
그리스도인에게, 불신자와 데이트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며,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6:14에 보면,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어찌 어둠과 빛이 같이하며” 이 구문이 특별히 결혼을 두고 얘기했다고는 하지 않지만 거의 결혼을 뜻하고 한 얘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지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린도후서 6:15-17).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구분되어야 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인-결혼- 만큼 중요한 곳은 없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하길,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린도전서 15:33). 불신자와 어떤 방식이건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데 있어 아주 쉽게 방해가 됩니다. 불신자는 전도해야지 그들에게 휩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불신자와 좋은 우정을 쌓는 것은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만 이렇게 우정을 쌓는 상태까지를 유지하는 이상을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불신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면 솔직히 얘기해서 당신의 우선순위는 낭만을 추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영혼 구원이 먼저입니까? 불신자와 결혼했다면 결혼생활에 있어서 그와 어떻게 영적인 친밀감을 개발시킬것인가?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인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서로 동의하는 바가 없다면 어떻게 질적인 결혼 생활을 세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자 커플의 성관계가 허락되거나 허락되지 않는 경우는 무엇인가?



질문: 크리스챤 부부의 성관계가 허락되거나 허락되지 않는 경우는 무엇인가?

대답:
성경은 말하길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합니다 (히브리서 13:4). 성경은 결코 한 남편과 한 아내가 성적으로 관계를 맺으라 그러지 말아라 언급하지는 않지만 남편들과 아내들에게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고린도전서 7:5a) 라고 합니다. 아마 이 구절이 결혼에 있어 성관계를 두고 얘기한 원칙이라 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남편과 아내가 성숙하게 동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둘 중의 아무도 내키지 않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우를 강요 당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한 남편과 한 아내 모두 성관계에 있어 새로운 변화 (예를 들면 오럴섹스, 다른 체위, 성적기구)를 주길 원하는 경우에 대해서 이를 저지하는 성경 구절은 특별히 없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부부가 성적인 관계에 있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령 부부가 동의한다 하더라도 다른 커플과의 관계는 간음입니다 (갈라디아서 5:19; 에베소서 5:3; 골로새서 3:5; 데살로니가전서 4:3). 당신의 배우자가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도 된다고 허락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업이 간음입니다. 포르노그리피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부추깁니다 (요한일서 2:16). 그러므로 하나님께 정죄당합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가 동의하는 한에서 성경에서 특별히 금하는 것은 부부간의 성적행동은 없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질문: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대답:
이는 결혼과 매일의 결혼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이미 ‘순종’을 설계하셨습니다. 태초에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이외에는 사람이 순종해야 할 다른 권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죄가 세상에 들어와 그 죄로 인하여 권위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가 들어온 땅에서 율법을 진행시킬 수 있는 권위를 세우시고 또한 인간에게 필요한 보호제도도 공급하셨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순복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야고보서 1:21; 4:7). 고린도전서 11:2-3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복하신 것과 같이 남편들이 그리스도에게 순복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말하길 아내들도 이와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순복은 사랑이 바탕이 된 리더쉽이 있을 때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할 때 (에베소서 5:25-33), 아내의 남편에 대한 순종은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그리스도어로 순종(Hupotasso)는 계속적인 진행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즉 하나님, 리더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순종은 단 한 번만 내리는 결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한 유형의 행동으로 굳어질 수 있는 지속적인 마음의 태도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말하는 순종은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에게 하는 일방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순복은 성령 충만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그리고 하나님께 성숙하게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순종은 쌍방적인 것입니다. 순종은 영광과 온전함을 나타냅니다. 아내가 그리스도가 교회에 베푸셨던 그런 사랑을 받으면 아내의 순종은 어렵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5:24은 말하길,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여기서 아내는 모든 옳음과 율법을 지키는 가운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율법을 어기거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하면서 남편을 순종하면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매튜 헨리는: 아내는 남편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 즉 남편의 두뇌로 만들어져서 남편을 다스리거나 발로 만들어 져서 남편에 의해 지배받게 하지도 않았다. 남편 옆에 있도록 만들어졌기에 남편과 동등한 위치를 지니면서 그의 팔 아래서 보호를 받도록 되어 있고 또 그의 심장에 가까워서 사랑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5:21의 순복은 5:22에 있는 순복과 동일합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서로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19-21절은 모두 성령충만한 결과들입니다 (5:18). 성령 충만한 신자들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5:19), 감사가 넘치며 (5:20), 서로에게 순종합니다 (5:21). 그래서 22-23절에서 바울은 성령 충만한 삶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종이란 아내가 전적으로 짓밟혀도 되는 존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의 도움아래,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희생적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