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관련된 질문


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까?



질문: 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까?

대답:
나는 원래 선한 사람이라 천국에 갈 겁니다” “그래, 난 나쁜 짓을 좀 했지만 그래도 좋은 일을 더 많이 했지. 난 천국에 갈꺼야” “ 성경 말씀 따라 살지 않는다고 지옥에 보내시지는 않을 꺼야. 시대가 변했잖아” “ 아동 학대자나 살인자들같이 정말 악한 사람들만 지옥에 갈꺼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거짓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이런 생각을 뿌립니다. 사단과 그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베드로전서 5:8). 사단은 항상 자신을 선한 척 가장합니다 (고린도후서 11:14). 그러나 그는 실제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자들의 마음을 조정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 4:4).

하나님께서 작은 죄들은 관여치 않는다거나 지옥은 오직 악한 자들에게만 해당될 것이라는 믿음은 거짓 입니다. 모든 죄는, 작고 하얀 거짓말이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며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만큼 충분히 선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3:23). 선한 일을 악한 일보다 많이 했다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실패 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로마서 11:6). 우리의 선행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디도서 3:5)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태복음 7:13). 죄된 생활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듯한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 2:1-2).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모든것이 완벽하고 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할 선택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단에게 유혹받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그들뿐 아니라 그들 이후에 태어난 모든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시고 신성하셔서 죄를 심판 하셔야만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죄인으로서 이 온전했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국에서 결합 될 수 있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하기 위에 이땅에 태어나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부활하셔서 (로마서 4:25) 죽음에서 승리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갈라진 틈을 잇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3).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심지어 사단도 믿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으려면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 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만들고 죄에서 돌아서서 그 분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22).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구원의 길은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만이 구원의 길 되십니다. 우리의 죄값을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23). 다른 어떤 종교도 죄와 죄의 결과를 심도있게 가르치지 못합니다. 다른 어떤 종교도 예수님께서 주셨던 죄에 대한 영원한 지불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종교 창시자도 육신의 몸으로 죄의 빚을 영원히 갚을수 있는 길이 되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1, 14). 우리의 빚을 갚기 위해서 예수는 하나님이 되어야 했습니다. 죽기 위해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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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방식은 무엇인가? 구원의 길 은?



질문: 구원의 방식은 무엇인가? 구원의 길 은?

대답:
배고프십니까? 육체적인 배고픔이 아니라 당신의 삶 가운데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가 있습니까? 즉 당신 안에 결코 만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요한복음 6:35).

혼란스러우십니까? 당신의 삶에서 어떤 뚜렷한 길이나 목적이 보이지 않습니까? 어두운 방 안에서 스위치를 찾지 못해 불을 켜지 못하는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12).

당신의 인생이 꽉 막혀 있는 것 같습니까? 많은 문들을 두들겨 보았으나 텅텅 비어있거나 허무한 것들만 발견하셨습니까? 만족스러운 삶의 입구를 찾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길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9).

당신은 항상 사람들로 인하여 실망하십니까? 인간관계가 깊이가 없고 껍데기만 있는 것 같습니까? 사람들에게 항상 이용당하는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길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한복음 10:11, 14).

당신은 죽은 후 어떻게 될지 궁금하십니까? 결국 썩고 부패할 것들을 위해 사는 것에 지쳤습니까? 도대체 이 인생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의심 되십니까? 죽은 후의 삶을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 11:25-26).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 있습니까? 진리는 무엇입니까? 인생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답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당신이 느끼는 배고픔은 영적인 배고픔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예수께서만이 채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어두움을 들어내어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만족된 삶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당신이 찾아 헤매던 친구이자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의 세상에서 그리고 앞으로 올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당신이 허전함을 느끼고, 어두움 가운데 길을 읽은 것 같고, 또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왔다고 합니다 (전도서 7:20; 로마서 3:23). 당신이 느끼는 마음속의 빈 공간은 당신의 삶 속에서 빠진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갖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로 그 관계를 잃었습니다. 게다가 이는 현재뿐 아니라 영원히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23; 요한복음 3:36).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짐을 지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21).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8). 그리고 삼일 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죄와 죽음에 대해 승리를 입증하셨습니다 (로마서 6:4-5). 그분은 왜 그리 하셨을까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죽음을 우리 죄에 대한 지불로 받아드리면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함 받고 깨끗해집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 배고픔은 만족되고, 어두움에 밝은 빛이 들어오고, 충만한 삶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된 가장 좋은 친구와 선한 목자를 알게 될 것입니다. 죽은 후에도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천국에서의 부활된 생명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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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믿음에 행위를 더해야 하는 것인가?



질문: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믿음에 행위를 더해야 하는 것인가?

대답:
이 질문은 아마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이 질문은 종교개혁의 동기가 되었고, 개신교와 카톨릭교회가 분리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또 이는 성경적인 기독교와 기독교 내의 종파를 구별시키는 열쇠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믿음에 더해진 행위에 의한 것인가? 나는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 받았는가 아니면 예수에 대한 믿음과 특정한 공적에 의해 구원 받았는가?

오직 믿음으로냐 혹은 믿음과 행위로서냐 라는 이 질문은 성경 구절들과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로마서 3:28, 5:1 과 갈라디아서 3:24을 야고보서 2:24과 비교해 보십시오. 어떤 분은 바울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과 야고보 (믿음과 행위로 얻는 구원)의 차이를 느끼실 것입니다. 바울은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독단적으로 말하는 것 같이 보이는 반면 (에베소서 2:-9),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 두 가지로서 의롭게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외관상의 문제는 야고보가 정확히 말하고자 하는 바를 검토해보고 나면 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야고보는 아무런 선한 행위를 가져오지 않는 믿음을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7-18). 야고보는 그리스도 안의 진실된 믿음은 변화된 삶과 선한 일들을 가져온다고 봅니다 (야고보서 2:20-26).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에 의한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진정 의롭게 된 자는 그의 삶 가운데 선한 일들을 맺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은 신자라고 하면서 삶 가운데 아무런 선한 일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순수한 믿음을 소유한 자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4, 17, 20, 26).

바울도 그의 글에서 동일하게 말합니다. 신자의 삶 가운데 있어야 하는 선한 열매들이 갈라디아서 5:22-23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소식에 바로 이어 (에베소서 2:8-9) 바울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 창조된 존재라고 알립니다 (에베소서 2:10). 바울도 야고보 만큼이나 우리의 변화된 삶을 기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야고보와 바울의 구원에 대한 가르침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같은 주장을 하는데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 뿐 입니다. 바울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고 야고보는 그리스도 안의 진정한 믿음은 선한 행위를 꼭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가?



질문: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가?

대답:
일단 한 번 받은 구원은 불변하는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알게 될 때부터 영원히 견고한 구원을 보장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성경의 수 많은 구절들이 증거합니다.

1. 로마서 8:30은 말합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늘에 계신 그 분의 품안에서 영화롭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미 이렇게 계획했기 때문에 한 신자가 영화롭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일단 사람이 한번 의롭게 되면 그의 구원은 보장됩니다. 즉 하늘에서 이미 영화롭게 된 것처럼 보장됩니다.

2. 바울은 로마서 8:33-34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하나님이 선택한 자를 고소하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변인 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아무도 못합니다. 그리스도 즉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분만이 정죄할 자격이 있으십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우리의 대변인이자 심판자 되십니다.

3. 신자들은 그들이 믿을 때 (요한복음 3:3; 디도서 3:5) 거듭(중생)납니다. 한 신자가 자신의 구원을 잃으려면 다시 거듭나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거듭난 새 생명이 다시 빼앗기는 경우는 보이지 않습니다.

4. 성령께서 모든 신자 안에 거하여 계시고 (요한복음 14:17; 로마서 8:9) 또 모든 신자를 세례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드십니다 (고린도전서 12:13). 고로 다시 구원이 없어지려면 성령이 거하지 않게 되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5. 요한복음 3:15은 말하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가질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받고 내일 잃게 된다면 그 생명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잃는다면 성경에 있는 영생에 대한 약속은 오류가 됩니다. (f)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이 말씀에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39). 기억하세요. 당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또한 당신을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으면 항상 구원 받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영원히 보장됩니다!

영원한 구원은 성경적인가?



질문: 영원한 구원은 성경적인가?

대답: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알게 될 때,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갖게 됩니다. 유다서 24절에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로 하나님을 말합니다. 한 신자가 넘어지지 않게 붙드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이런 영원한 보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 결과이지, 내가 나 자신의 구원을 잘 관리한 결과가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선포하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29). 예수님과 하나님 두 분 모두 우리를 꽉 붙들고 계신데, 어느 누가 우리를 하나님과 예수님의 품에서 갈라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4:30에 믿는 자들은 구원의 날을 위해 인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영원한 구원을 보장 받지 못한다면 인침은 구원의 날까지 효력을 지니지 못할 것입니다. 죄를 짓거나, 배교하거나, 불신하는 날 전까지만 효력을 지닐 것입니다. 요한복음 3:15-16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가질 것이라 합니다. 한 때는 영생을 약속 받고, 또 다른 때는 뺏긴다면 이는 처음부터 영생이 아닐 것입니다. 영원한 보장이 거짓이라면 성경에 나와 있는 영생에 대한 약속은 잘못 되었을 것입니다.

영생의 보장에 관한 가장 강력한 주장은 로마서 8:38-39절에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영원한 구원은 하나님이 구원하신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영원한 보장은 그리스도가 이미 값을 지불하신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이며, 성령님에 의해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나의 구원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질문: 나의 구원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대답:
당신이 구원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5:11-13를 숙고하십시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누구에게 아들이 있습니까? 아들을 믿고 받아들인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1:12).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당신은 생명을 소유한 것입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영생)이지 순간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각자의 구원에 대해 확신하길 원하십니다. 매일 내가 구원 받았는지 걱정하거나 의아해하면서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문제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3:16; 사도행전 16:31). 예수님이 내 죄 값을 갚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로마서 5:8; 고린도후서 5:21). 나의 구원을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 신뢰하십니까? 이 질문들에 “예스”라고 대답하셨다면, 당신은 구원 받으셨습니다! 확신이라는 것은 모든 의심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김으로서 내가 구원 받은 사실에 대한 모든 의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자신을 신뢰했던 자들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0:28-29). 영생은 말 그대로 영원한 것입니다. 아무도, 심지어 구원 받은 당신 자신도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지 범죄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시편 119:11). 이는 의심하는 죄까지 포합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기뻐하십시오. 의심에 눌리지 않고 확신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 구원에 대해 결코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확신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대속죄는 무엇인가?



질문: 대속죄는 무엇인가?

대답:
대속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로마서 3:9-18, 3:23을 읽으세요),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6:23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합니다.

이 구절은 몇 가지 가르침을 줍니다. 즉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고, 죄의 대가로 영원히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망(죽음)은 “분리”를 뜻합니다. 모든 사람은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어떤 이들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지낼 것이며, 또 다른 이는 지옥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사망은 지옥에서의 삶을 말합니다. 둘째,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의 가능성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대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나의 자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내가 사실 그 십자가 위에 놓여 졌어야 했습니다. 죄안에서의 삶을 사는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를 대신하여 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대체물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21)..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전서 2:24). 여기서도 그리스도가 우리가 지은 죄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죄 값을 갚으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베드로전서 3:18).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대체물”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죄를 위한 지불 완료를 뜻하는 “속죄”자체였음을 알려 줍니다.

대속물을 다룬 또 다른 구절은 이사야 53:5입니다. 이 구절은 오실 메시야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을 아주 자세하게 얘기하며, 또한 예언된 대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구절을 잘 보면 대신하여 이루어진 일들이 보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모든 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 값을 갚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갚았다면, 우리는 단순히 벌을 받고 지옥에 영원히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먼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기에 우리는 지금 우리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아니라 영원히 그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구원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자리를 대신 해주실 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기 전의 자들은 어떻게 구원 받습니까?



질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기 전의 자들은 어떻게 구원 받습니까?

대답:
인간의 타락 이후, 구원의 근거는 항상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습니다. 십자가 이전이나 이후나 아무도 이 역사적인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약시대 이전의 성도의 죄나 신약시대 이후 성도의 죄값을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구원의 필요조건은 항상 믿음이 되어왔습니다. 한 개인의 구원의 목적은 항상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길,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편 2:12). 창세기 15:6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이를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로마서 4:3-8도 참조). 히브리서 9:1-10:4에서도 가르치듯이 , 구약시대의 제사 제도는 죄를 대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 흘리는 날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변한 것은 신자들의 믿음의 내용입니다. 인간이 믿어야할 하나님의 요구사항들은 그 시점까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계시의 양에 기초합니다.. 이를 또한 점진적인 계시라고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창세기 3:15에서 하신 약속 즉, 여자의 후손이 사탄을 이길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이브를 모든 산 자의 어미로 이름하였습니다 (20절).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믿음을 받으셨다는 것을 가죽 옷으로 화답하셨습니다 (21절). 그 당시에는 이것이 아담이 믿을 수 있는 모든 계시였고, 그리고 그를 믿었습니다.

창세기 12장과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새 계시들을 믿었습니다. 모세 이전에는 성경이 없었더라도 하나님이 나타내 보이신(계시하신) 것들에 대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는 신자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 문제를 언젠가 해결하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죄 사함 받았습니다. 현재의 우리들은 갈보리에서 죄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이런 구약시대 사람들을 돌아 봅니다(요한복음 3:16; 히브리서 9:28).

그럼 그리스도가 살아계셨을 때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기 전의 신자들의 구원은 어떨까요? 그들은 무엇을 믿었을까요?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이 끝날 무렵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태복음 16:21).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2).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온전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것을 이루실지, 아담, 아브라함, 모세 또는 데이빗이 알았던 것보다 더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지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전에 살았던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계시들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전체적인 그림을 압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브리서 1:1-2). 우리의 구원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죽음에 근거하고, 우리의 믿음도 여전히 구원을 위한 조건이며, 우리 믿음의 대상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우리 믿음의 내용은 여전히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과 장사되고 삼일 째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3-4).

예수님에 대해서 들을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실까?



질문: 예수님에 대해서 들을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실까?

대답: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들어 보았든 안 들어 보았든 간에 하나님께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길 하나님은 자연을 통하여 (로마서 1:20)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 안에 (전도서 3:11) 자신을 분명히 계시하셨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모든 인류는 죄스러워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23). 하나님의 은혜 없이 우리는 우리의 죄된 욕망을 따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가치 없고 절망스러운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계속해서 거부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하십니다 (로마서 1:24-32).

사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그들이 들은 것, 그리고 자연 가운데 보이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4:29은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이 구절은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찾는 자는 누구든지 그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알수 있게끔 하십니다.

문제는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로마서 3:11)입니다. 사람들은 자연과 자신의 마음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부하고 대신에 자신들이 새긴 신을 숭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자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공정성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방법으로 자신을 알리셨다는 데에 사람들은 나름대로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이 지식을 거부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옥으로 벌하심이 정당하다고 합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는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부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28:19-20; 사도행전 1:8). 하나님이 이미 드러내신 계시를 거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열심으로 전파 하는 동기 부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사람들은 죄에서 구원 받고, 하나님을 떠난 영원한 지옥으로부터 구출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문제에 빠져 들게 됩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가 구원 받는다면…우리는 어떤 자가 복음을 듣지 않았는지 분명히 하면 됩니다. 그럼 최악의 경우는 복음을 사람들과 나누고, 복음을 거부하게 만드는 경우일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자는 반드시 심판 받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 전도는 필요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 받은 사람을 굳이 복음을 듣고 거부해서 영원한 심판을 받게끔 하는 위험을 감수합니까?

영원히 보장되는 구원은 죄를 정당화 시키는가?



질문: 영원히 보장되는 구원은 죄를 정당화 시키는가?

대답: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랄는 교리가 빈번히 부정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살고 싶은 데로 살아도 여전히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부추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령 이것이 실생활에서 가능하다 할지라도 영원한 구원의 본질은 아닙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자신이 죄 짓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의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차이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구원은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3:16; 에베소서 2:8-9; 요한복음 14:6).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순간 그는 구원 받고, 그 구원을 보장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갈라디아서 3:3에서 말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우리가 믿음으로서 구원 받았다면, 그 구원은 믿음으로 유지되고 보장되어집니다. 구원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구원을 유지하는 것도 내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유지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유다 24절). 우리의 구원을 붙들고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10:28-29).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로마서 8:38-39).

한 번 받은 구원의 영원성을 부인하는 것은 내 선한 행위로 나의 구원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오직 은혜로서 가능한 구원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적으로 구원을 받았지 나의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4:3-8). 고로 구원이 계속 유효하도록 유지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 내 죄 값을 갚기에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나의 모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 그러니까 구원 전과 구원 후의 모든 죄를 대신하기에 절대적으로 족합니다 (로마서 5:8; 고린도전서 15:3; 고린도후서 5:21).

그럼 이렇게 주장하면서 구원 받은 자는 살고 싶은 데로 맘대로 살아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사실 이 질문 자체가 근본적으로 위선적입니다. 성경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살고 싶은 데로 살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육체의 행위를 맺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 요한일서 3:6-9은 분명히 합니다. 진실한 신자는 계속되는 죄 가운데 살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죄가 은혜를 더한다는 거짓 주장에 사도 바울은 주장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1-2).

영원히 보장되는 구원은 죄를 지을 수 있는 허가증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보증된다는 것을 아는 보장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엄청난 선물인 것을 알고 이해할 때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지불하신 값을 알고서도 어느 누가 계속해서 죄에 빠지겠습니까(로마서 6:15-23)?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영원히 보장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한 사람 중 누가 그 사랑을 도로 하나님의 얼굴에 던지겠습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진실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3:6).

구원 받을 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와의 관계는?



질문: 구원 받을 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와의 관계는?

대답: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의 관계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둘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아십니다. 아마 다른 여느 교리들보다도, 이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너무 멀리 치우치는 것은 구원에 대한 이해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누가 구원 받을지 아신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로마서 8:29; 베드로전서 1:2). 에베소서 1:4은 말하길 하나님은 이 땅의 기초를 세우시기 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신자들을 “선택 받은” 자와 (로마서 8:33; 11:5; 에베소서 1:11; 골로새서 3:12; 데살로니가전서 1:4; 베드로전서 1:2; 2:9) “뽑힌”자들로 묘사합니다(마태복음 24:22, 31; 마가복음 13:20, 27; 로마서 11:7; 디모데전서 5:21; 디모데후서 2:10; 디도서 1:1; 베드로전서 1:1). 신자들은 미리 예정되었고 (로마서 8:29-30; 에베소서 1:5,11) 구원을 위해 선택되었다고 분명히 합니다(로마서 9:11; 11:28; 베드로후서 1:10).

성경은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 할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요한복음 3:16; 로마서 10:9-10). 그러니까 하나님은 구원 받을 자를 아시며, 구원 받을 자를 선택하시며, 그리고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 반드시 그리스도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이 세가지가 어떻게 함께 조화되는지는 유한한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로마서 11:33-36). 우리의 책임은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8-20; 사도행전 1:8). 즉 예정론, 선택론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을 전하는 데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